어제는 오랜만에 가나난 포럼에 다녀왔다. 어제의 주제는 'Digital Technologies that drive Broadcasting Industry' 로서 KBS의 고찬수 피디님께서 스피커로 나서서 방송의 미래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을 해 주셨다.
가나난 포럼: http://sites.google.com/site/ganananforumsite/
고찬수 PD: http://blog.kbs.co.kr/showpd
내가 마케터로서 재미있게 들은 부분들에 대해서 정리해 본다.
1. Contents vs. Platform
결국 디지털 기술이 방송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화두는 누가 플랫폼을 잡고 누가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가? 라는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공중파 방송은 정부규제와 정책의 비호아래 컨텐츠 제작과 플램폼 운영(주파수)을 모두 소유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는 이 철옹성이 곧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 일례로 YouTube만 해도 방송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reach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는 플레이어다. 게다가 유튜브는 이미 자신들이 컨텐츠까지도 제작해 내고 있지 않은가? 가끔 생각해 보면 구글은 정말 무서운 회사라는 생각이...
컨텐트 제작에 있어서도 이미 Cable TV나 IPTV 의 컨텐츠 제작 수준은 공중파의 그것을 넘어서고 있다. 요즘 Cable TV에서 유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만 봐도 공중파의 수준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다. 공중파 방송이 갖고 있던 공신력과 신뢰도 또한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약해지는 느낌이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정부나 일부 정보의 source에 제한된 access를 갖고 있던 공중파의 권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인터넷 세상에서의 공신력은 바로 소비자들에게서 나온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한 컨텐츠가 더 공신력 있고, 내공이 있는 컨텐츠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컨텐츠 생산에 있어서 기술적인 제약마저 생겨나고 있다. 현재 방송을 타고 있는 HD TV 이상의 화질을 자랑하는 3D TV나 UDTV의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공중파 방송의 주파수 대역으로는 소화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즉, 원천적으로 공중파 방송은 더 이상 송신할 수 없는 기술이 등장해 버린 것이다.
2. 지상파 방송국들 포지셔닝을 생각하라.
영국의 BBC는 스스로를 더 이상 방송국으로 규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스스로를 contents 제작사로 생각한다. 영국의 BBC 라고 하면 왠지 뉴스와 다큐멘터리에 강점을 갖고 있을 것 같다. BBC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라면 한번 보고 싶고, BBC 뉴스라고 하면 공신력이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무한 경쟁으로 치닫게 되는 디지털 방송의 현실에서 컨텐츠 제작에 참여하는 수많은 플레이어들 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쟁이 생겨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마케팅과 브랜딩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재 SBS, MBC, KBS의 브랜드는 무엇인가? MBC 라고 하면 뉴스, 드라마, 다큐멘터리, 혹은 예능 어느 하나가 다른 방송국 보다 월등하게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지금까지는 정부 정책의 비호 아래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식의 비즈니스를 해 왔겠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1-2가지 집중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MBC나 KBS는 보다 공영성을 요구받지 않을까 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방송국들이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포지션과 브랜딩을 생각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들에게는 어느정도 brand equity 가 형성되어 버렸다. 즉, 사람들이 이러한 방송에 요구하는 것과 TVN 이나 올리브 TV에 요구하는 것은 이미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전에 MBC에서 했던 아마존의 눈물 과 같은 프로그램은 어느정도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케이블 TV 업체들은 그런 컨텐츠를 제작할 수 없다. 오로지 MBC이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제 공중파 방송국들은 '오직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3. 지상파 방송국, 돈은 어떻게 벌까?
지금까지 지상파 방송국들의 수익은 대부분 광고에서 나왔다. 사실 인터넷의 보급률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TV is dead' vs. 'TV is alive' 의 논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마케팅 업계에서 미디어 플래닝을 직접 하면서 느끼는 것은 적어도 광고의 맥락에서는 TV 광고를 하는 광고주들은 더 많은 TV광고를 하고, TV가 아니라고 판단한 광고주들은 더욱 TV를 줄이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20-30년 가까이 TV 광고를 하다보니 어떤 제품군이 TV광고를 어떻게 할때 효과가 큰지를 알게 된 것 같다. TV를 틀고 가만히 째려보라. TV에 나오는 광고의 산업군은 거의 일정하다. 금융, 통신, 전자, 자동차, 식품, 화장품, 패션,.. 아마도 10-15개 정도의 산업군에서 모든 TV 광고를 다 커버하고 있고, 나머지는 별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이유에는 사람들이 어느 시점에 구매 결정을 하는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사람들이 집에서 TV를 보면서 결정을 하게 되는 제품군과 이마트의 매장에서 막상 구매하기 바로 직전에 구매결정을 하는 제품군 등으로 나눠보자는 것이다. TV광고를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제품군들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잘 이해하게 되었다.
설명이 길었지만, 여튼, TV광고를 계속 하는 산업이 있기 때문에 TV 광고시장이 한 순간에 허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TV의 시청률이 줄어들고, 50% 이상의 대박시청률 프로그램이 없어지고, 점차로 광고를 skip 할 수 있는 기술들이 발달하기 때문에 공중파 방송국들 입장에서는 불안할 것이다. 게다가 KOBACO 가 없이지고 모든 방송국들이 광고 영업의 일선에 뛰어들게 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시장이 전개될 것이다.
공중파 방송국들은 그야말로 광고수주 전쟁에 돌입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더욱 자신들만의 포지션과 각자가 광고주에게 줄 수 있는 차별점을 부각시켜야 할 것이며, 광고 상품도 다양한 패키지로 계발해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컨텐츠를 이제는 단순히 DVD판매 이외에도 더 다양한 소스로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서 컨텐츠 기획 단계부터 고민해 내야 할 것이다.
4. 결론
어제 고찬수 PD님의 강연은 그동안 내가 잘 몰랐던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방송을 변화시킬 것인가? 에 대해서 많은 자극을 주었다. 하지만 한 겹 벗겨놓고 생각해보니 결국은 어느 산업이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인터넷 컨텐츠 제작 업체들은 '어떻게 하면 네이버 1면에 띄우지?" 라는 고민을 하고, 많은 제조업체들은 '어떻게 하면 이마트나 신세계 백화점에 입점시켜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라는 생각을 하고, 많은 모바일 컨텐츠 제작 업체들은 "어떻게 하면 앱스토어나 SK텔레콤 플랫폼에 들어갈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있다. 즉 플랫폼에 들어가기 (distribution)과 좋은 자리 차지하기 (visibility), 이 두가지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중파 방송과 같은 과거 플랫폼이 사라져 가는 업체들은 불안함을 느끼겠지...
어제 고찬수 PD님께서 KBS 내부의 한 상사분과의 대화를 소개해 주셨다. 디지털 기술이 몰고 올 수많은 변화에 대해서 KBS의 한 임원에게 설명을 해 드렸더니 그 분이 이렇게 물어보더란다.
KBS 임원: 근데... TV가 몇년 정도 더 갈꺼 같은가?
고PD님: 한 5-10년 정도는 더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KBS 임원: 아.. 그러면 내 정년때까지는 문제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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